문헌정보학

퇴사 후 문헌정보학 기반으로 작은도서관 창업을 고민한 이유

memo03300 2025. 8. 3. 11:46

퇴사 후 처음으로 내 삶의 방향을 묻다

퇴사를 결심한 건 단순한 권태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가를 끊임없이 되물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은 늘었지만,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줄어들었다.
엑셀 수치를 채우는 일, 회의에서 보고서를 읽는 일, 마케팅 전략을 논의하는 일. 모두 필요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퇴사 후, 나는 비로소 나만의 진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활용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게 문헌정보학과에서 배운 정보 서비스의 본질이었다.
정보는 소외된 사람에게 힘이 될 수 있고, 자료는 구조화될 때 진짜 지식이 된다. 그동안은 단순히 전공으로만 생각했던 문헌정보학이, 이제는 삶의 방향이자 실천 도구로 다가왔다.

이 글에서는 내가 왜 작은도서관 창업이라는 길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정에 문헌정보학이 어떤 기반이 되었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창업 고민

 

작은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가능성

작은도서관은 말 그대로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은 공간이다. 공공도서관이 가진 행정적 절차나 지역적 제약을 넘어, 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정보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도서 대출이나 열람에 국한되지 않고, 강연, 독서 모임, 글쓰기 교실, 디지털 정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장 가능하며, 정보 접근의 평등성과 교육 기회의 균형을 실현하는 커뮤니티 거점이 될 수 있다.

나는 퇴사 후 다양한 커뮤니티를 탐색하며 깨달았다. 정보격차는 단지 경제적 빈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지역에 없다는 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도서관이 없거나, 있어도 멀거나, 있어도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보를 멀리하게 된다.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정보 서비스의 개념은 이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이용자의 정보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구조와 서비스를 설계하는 일이야말로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핵심 역량이다. 그 역량은 거창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골목 안에 위치한 작은 공간 하나를 통해서도 실현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작은도서관은 그런 점에서 전공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문헌정보학 기반의 도서관 창업 기획, 정보 설계로부터 시작된 꿈

도서관을 만든다고 해서 단지 책을 모아두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읽고, 그것을 정보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나는 작은도서관을 ‘단순한 책의 공간’이 아닌 ‘정보 설계가 구현된 플랫폼’으로 구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의 분류 체계를 단순한 KDC에서 벗어나 이용자의 삶 중심 카테고리로 재설계할 수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자녀 교육이 처음인 부모들을 위한 정보”, “은퇴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를 위한 큐레이션” 같은 방식이다.
이는 단지 책의 재배치가 아니라, 이용자의 정보 요구를 중심에 둔 정보 구조 설계이며, 문헌정보학이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또한 메타데이터와 색인을 기반으로, 디지털 카탈로그나 지역 정보 연계 DB를 구축할 수도 있다.
예컨대, 도서와 지역 공방, 강좌, 멘토를 연계해 주는 정보 큐레이션 기능은, 전공자가 가진 데이터 설계 능력과 이용자 행태 분석 능력이 만나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도서관이라면, 단순히 책을 빌리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찾고, 나와 닮은 이야기를 발견하며,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나는 바로 그런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현장을 돌아보며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다

도서관 창업이 로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현실적인 준비도 필요하다. 나는 퇴사 후 약 3개월간 지역 내 작은도서관 10여 곳을 탐방하며 실무 담당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도서관은 ‘공간’보다 ‘운영 철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곳은 화려한 인테리어와 장서 수로 주목받았지만, 이용자 수는 적었다. 반면 작고 소박하지만 이용자 니즈에 맞는 도서 큐레이션과 프로그램 운영으로 ‘다시 찾는 공간’이 된 도서관도 있었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나는 그 차이를 ‘정보 설계의 유무’로 해석했다. 책을 어디에 두는가, 어떤 주제로 엮는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공하는가는 결국 이용자 중심 사고와 정보 조직 능력에서 갈리는 것이었다.

운영자들은 공통적으로 “문헌정보학 전공자라면 도서관을 더 잘 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책을 분류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정보를 ‘구성’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말에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배운 이론과 실습은 현실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보로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을 꿈꾸며

퇴사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불안정하고 고단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문헌정보학이라는 전공이 내게 얼마나 실천적인 무기였는지를 깨달았다.
정보를 설계하고,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역량 중 하나다. 작은도서관 창업은 단순한 공간 창출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의 흐름을 재구성하고, 소외된 정보를 삶 가까이로 끌어오는 일이다. 문헌정보학은 그 일의 중심에서 작지만 단단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학문이다.

나는 아직 도서관을 창업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매일 같이 이용자 분석표를 그리고, 공간 구조도를 스케치하며, 정보 큐레이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것은 내 전공을 ‘직업’이 아닌 ‘실천 방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묻지 않는다. “문헌정보학은 어디에 쓰이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문헌정보학은 나의 삶과,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연결점이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