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정보학, 정말 사서만을 위한 전공일까?
문헌정보학과에 다닌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가 되는 거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틀리지 않지만, 너무 협소한 시선에 갇혀 있다. 실제로도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도서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학문은 다양한 직종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휘한다.
문헌정보학은 단순히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 본질은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구조화하여, 사람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설계 능력이다. 이 핵심 역량은 사서뿐만 아니라, 데이터 기획자, UX 디자이너, 디지털 마케터, 콘텐츠 기획자, 아카이브 관리자 등 다양한 직무에서 폭넓게 응용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비사서 직군에서 어떻게 전공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제 사례와 경험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정보기획·콘텐츠 설계 분야에서의 문헌정보학 응용
문헌정보학은 ‘정보기획’이라는 직무에서 매우 강력하게 활용된다. 기업이나 기관의 웹사이트, 블로그, 앱, 콘텐츠 플랫폼 등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 구조화하여 제공할 것인지는 단순 디자인이나 개발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나누고,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며, 어떤 경로로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인지의 결정은 바로 문헌정보학의 정보 설계 원칙과 맞닿아 있다.
내가 참여했던 한 콘텐츠 플랫폼 기획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주제·형태·이용자 연령대별로 재분류하는 작업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문헌정보학 수업 시간에 배운 주제어 부여, 색인어 설정, 정보 계층 구조 설계 기술이 그대로 적용됐다.
문헌정보학적 접근은 단순히 키워드나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의 맥락을 고려하여 이용자에게 ‘찾기 쉬운’ 구조를 제공하는 데에 핵심이 된다. 실제로 대형 포털, 미디어 기업, 출판사, 공공기관의 콘텐츠 기획팀에서는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정보 구조화 능력과 콘텐츠 아카이빙 전략 수립 경험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 UX 설계에서 활용되는 정보조직 능력
데이터 기반 직무에서의 응용이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데 강한 훈련을 받는다.
단순 수치를 분석하는 것과 달리, 데이터를 의미 있는 단위로 나누고, 정보의 관계를 해석하며, 분류 기준을 설계하는 능력은 UX 설계자나 데이터 분석 직무에서 특히 유용하다. 예를 들어, 이용자 행태 분석을 통해 앱 내 정보 접근 경로를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나는 문헌정보학에서 익힌 이용자 정보 요구 분석 기법, 분류 체계 수정 방법, 검색어 로그 분석 방식을 활용해, 메뉴 구조를 재편성하고 검색 결과 정렬 방식까지 바꿨다. 그 결과, 이용자의 콘텐츠 재방문율이 크게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또한, UX 설계에서는 정보 아키텍처(IA)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IA란 이용자가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어떻게 찾고, 어떤 경로로 이동하며, 어떤 방식으로 탐색하는지를 설계하는 영역이다.
이 분야는 문헌정보학이 강조하는 정보의 조직, 분류, 탐색구조의 논리화와 거의 동일하다. 즉, 정보 탐색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UX/데이터 분야에서도 분명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빙과 기록관리 직무에서의 실무 적용
많은 공공기관, 연구소, 언론사, 문화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아카이브하고 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분류·보존하는 정보 설계 능력이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공공기록물 관리, 웹 아카이빙, 디지털 자산 관리 등의 분야에서 직접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나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문화기관의 기록관리 업무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정책 자료, 사진, 행사 안내문, 영상, 보도자료 등 다양한 형식의 자료들을 주제별로 정리하고, Dublin Core 기반 메타데이터를 설계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 이때 문헌정보학에서 익힌 메타데이터 스키마, 분류체계 적용 경험, 주제어 통제 전략이 그대로 실무에서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대기업도 자사의 콘텐츠를 장기적으로 아카이브하고, 내부 정보 자산을 구조화하기 위해 기록관리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사서 자격증이 없어도, 문헌정보학 기반의 정보 조직과 설계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실무에 투입된다.
사서만이 아니다, 정보 구조 설계자로서의 전공 활용법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더 이상 도서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디지털 콘텐츠, 데이터, 기록, 플랫폼, 정보 서비스의 모든 흐름 속에 문헌정보학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전공이 가진 핵심 역량은 단순 지식이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맥락과 용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그 사고력은 사서라는 직무를 넘어서, 콘텐츠 전략가, 데이터 설계자, UX 기획자, 디지털 큐레이터, 정보 아카이빙 전문가로의 길을 열어준다.
전공을 공부하며 내가 배운 것은, 정보가 많다고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 정리되어야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문헌정보학은 바로 그 정리의 철학을 실천하는 학문이다. 사서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문헌정보학으로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정보의 구조를 이해하고, 사람을 위한 설계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21세기형 정보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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