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만 배웠던 문헌정보학이 현실로 다가오던 순간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이 있었다. “내가 배우는 이 정보 구조, 분류체계, 메타데이터 설계가 실제 현장에서 정말 쓰일까?” 교과서와 강의는 탄탄했지만, 도서관이라는 현장은 낯설고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3학년 2학기, 나는 한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겪은 단 한 번의 경험이 문헌정보학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글은 그때의 경험, 즉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현장과 연결된 순간’을 처음으로 체감한 이야기다. 실습 중 마주한 작은 사건 하나가, 내게 정보 설계의 힘이 얼마나 크고 실질적인지 가르쳐주었고, 그것은 지금도 내 진로 선택에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도서관 실습 첫날, 엉켜버린 서가 정리표 앞에서
내가 배정된 부서는 자료조직과 열람지원팀이었다. 첫날 업무는 단순해 보였다. 새로 입고된 도서를 분류 체계에 따라 등록하고, 서가에 정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가에 가보니, 작은 문제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600 기술’ 대분류 아래 있어야 할 ‘670 생활과학’ 관련 도서들이 ‘300 사회과학’ 구역으로 섞여 있었다. 일부 도서는 KDC 분류 번호는 맞지만, 주제어가 다르게 해석되어 엉뚱한 곳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임 실무자가 주제에 대해 다소 모호하게 분류했거나, 시스템에 잘못된 정보가 입력됐던 것. 문제는 이로 인해 이용자들이 해당 주제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한 어르신이 ‘식품 안전’ 관련 도서를 찾다가 500번 대 과학 코너에서 20분을 헤매셨고, 결국 사서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전공 수업에서 배운 분류의 명확성, 정보의 맥락 파악, 이용자 관점의 정보 접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서가의 문제 지점을 정리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메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제안서가 아니라, 내가 배운 문헌정보학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실습 과제였다.
색인 재설계, 그리고 정보 이용률의 변화
며칠 후, 담당 사서 선생님은 나의 메모를 보고 정식 회의를 열어 주셨다. 우리는 문제의 근본이 단순한 ‘정리 방식’이 아니라, 색인어 설정과 메타데이터 태그의 불균형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 ‘식품 안전’이란 주제가 일부 도서에서는 ‘위생학’, ‘식품과학’, ‘소비자 보호’ 등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시스템 검색 결과도 분산되고 있었다.
나는 색인어 통일 작업을 제안했다.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주제어 통제 전략, 동의어 관리, 상위어-하위어 구조 설계 방법을 기반으로 키워드를 정리했다.
예 :
- 식품 안전 = 위생학(대등어)
- 식품 안전 ⊂ 생활 건강 ⊂ 보건학(상위어)
- 식품 안전 ⊃ GMO / 식중독 / 식재료 보관(하위어)
이후 도서관 내 전산 시스템에서도 검색어 기반 분류를 수정하고, 온라인 검색창에 자동완성 제안 기능까지 추가됐다. 결과는 놀라웠다. 해당 주제의 도서 대출률이 이전 대비 35% 이상 증가했고, 사서의 정보 안내 요청도 감소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문헌정보학이 단순히 ‘이론의 학문’이 아니라, 정보 흐름을 바꾸는 ‘현장 기술’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정보 서비스 현장에서 마주한 진짜 감동
실습 마지막 주, 한 중학생이 조용히 나를 찾아왔다. “혹시 지난주에 식품 관련 책 서가 위치 바꾼 거, 선생님이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학생은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발표 자료 정말 잘 만들었어요. 검색했을 땐 못 찾았는데, 이번엔 책들이 한데 모여 있어서 금방 찾았어요.”
그 순간, 나는 어떤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보다 더 깊은 성취감을 느꼈다. 단순히 책 몇 권의 위치를 바꾼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정보 접근을 도와주었고, 그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도운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정보 서비스의 본질이라는 걸, 나는 그날 깨달았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 “정보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정보는, 누군가에게 도달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 문장을 나는 실습 현장에서 비로소 ‘이해’한 것이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얻은 실무의 관찰력과 문제 해결력
실무 경험을 하면서 내가 느낀 또 하나의 강점은,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가진 ‘정보 문제를 보는 눈’이었다. 단순한 작업이라도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정보의 흐름, 구조의 오류, 맥락의 단절 등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현장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예를 들어, 이용자 문의 데이터를 살펴보다가 나는 반복적으로 검색 실패가 발생하는 키워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환경호르몬’ 관련 도서는 여러 권이 있었지만, 검색 결과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서 메타데이터에는 ‘내분비계 교란물질’이라는 공식 학술용어만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발견은 나를 더 깊은 고민으로 이끌었다. “전문용어 중심의 색인은 이용자 친화적인가?” 결국 나는 사서 선생님과 함께 대중어 기반의 색인 보완표를 만들었고, 이후 검색 정확도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배운 ‘이용자 요구 기반 색인 설계’, ‘정보 접근성 중심 사고’, ‘주제어 다층화 전략’이 실전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를 경험했다.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실무에서 배운 진짜 가치
실습을 마친 후 나는 더 이상 ‘문헌정보학은 어디에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문헌정보학은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분류의 오류를 발견하고, 색인을 재설계하며, 메타데이터를 정비하고, 이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일.
이 모두가 단지 책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사람에게 닿게 하는 설계자로서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직장, 어떤 분야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단순한 실습 경험이 아니었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진짜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전공자’가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이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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