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이론과 실무를 배워왔지만, 그중에서도 '전자도서관'이라는 개념은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디지털화된 자료, 온라인 정보 서비스, 메타데이터 설계, 정보 검색 최적화 등 다양한 개념이 결합된 전자도서관은 그 자체로 복합적인 구조였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실제로 전자도서관 시스템을 직접 구축해 보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문헌정보학이라는 전공이 단지 도서관학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 설계·기획·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실무 중심 학문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대학교 내부에서 진행된 시범 전자도서관 구축 과제였다. 정보통신원, 학술정보팀, 문헌정보학과 교수진, 학생 개발팀이 함께 협업하며 학교 전공 자료와 교수 연구 성과물, 학생 졸업논문을 디지털 콘텐츠로 변환하고, 분류하고, 검색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으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메타데이터 설계, 분류 체계 구축, 정보 검색 기능 설계,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등 다양한 실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았는지, 어떤 전공 지식이 실제로 활용되었는지, 그리고 이 경험이 문헌정보학이라는 전공에 대해 어떤 인식을 심어주었는지를 단계적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시스템의 첫걸음, 자료 구조와 분류 체계 설계
전자도서관 시스템의 시작은 단순한 웹사이트 제작이 아니라, 정보 구조 설계였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콘텐츠가 잘못 분류되어 있거나 검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전자도서관의 기능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전자자료 분류 체계 구성이었다.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분류론 수업은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KDC(한국십진분류법) 체계에 따라 교수 논문, 졸업작품, 강의자료 등을 분류했고, 콘텐츠 유형에 따라 주제, 형식, 생산 주체, 발행 연도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계층적 분류 트리를 설계했다.
이때 ‘정보는 한 가지 관점으로만 분류할 수 없다’는 수업 시간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래서 **복합 분류 방식(dual classification)**을 도입해 사용자가 ‘주제별’로도 찾을 수 있고, ‘자료 유형별’로도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다음은 메타데이터 설계였다. 단순히 파일 이름이나 제목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Dublin Core 메타데이터 스키마를 기반으로 주요 필드(Title, Creator, Subject, Description, Date, Format 등)를 작성했고, 검색 가능성과 이용자 시각에 맞춘 필드 커스터마이징 작업도 진행했다. 예를 들어 졸업논문의 경우, ‘지도교수’, ‘학과’, ‘학번’ 등의 필드를 추가해 상세 검색을 가능하게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익혔던 정보 조직론, 메타데이터 설계론, 정보시스템론 지식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실무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공자의 실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검색 기능 설계와 사용자 경험(UX) 설계의 충돌과 조율
전자도서관 시스템 구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는 정보 검색 기능이다. 아무리 자료가 많아도, 사용자가 찾지 못한다면 전자도서관은 실패한 시스템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정보검색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검색 알고리즘 설계팀과 협업해 색인어 설계, 검색 필터 구성, 자동완성 기능 도입을 제안하고 직접 기획안 작성을 맡았다.
문제는 기술 개발자와의 ‘언어 차이’였다. 나는 “색인어를 논리적으로 설계해서 검색 누락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개발자는 “검색어가 너무 많으면 속도 저하와 서버 부하가 발생한다”며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실제로 우리 도서관 OPAC 검색 데이터를 분석해 검색 성공률/실패율을 통계로 제시했고, 가장 자주 쓰이는 키워드만을 색인어로 우선 등록하는 선별 색인 방식을 제안해 결국 이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
또한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사결정이 많았다. 예를 들어, 검색 결과 화면에서 저자/출판사/요약 정보를 어디까지 노출할 것인지, 관련 자료 추천 기능을 자동화할 것인지 여부 등이 논의되었다. 이때 나는 정보봉사론 수업에서 배운 이용자 중심 정보 설계 원칙을 토대로, 단순히 기술자 중심이 아니라 ‘사용자 흐름’을 기반으로 한 UI/UX 개선안을 도출했다.
특히 졸업 논문 검색 시, ‘최근 등록순’ 정렬과 함께 ‘유사 주제 논문 보기’ 기능을 넣었는데, 이 기능은 실제로 학부생들의 만족도가 높았고, 개발자 측에서도 기술적 구현이 용이해 바로 반영되었다.
이 경험은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기술자와 이용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계기였다.
런칭 이후 피드백 분석과 개선, 그리고 느낀 점
전자도서관 시스템은 구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영 이후가 진짜 시작이었다. 시스템이 오픈된 후, 우리는 2개월간 사용자 피드백을 수집했고, 검색 로그와 이용 패턴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능 개선에 들어갔다.
이때 또 한 번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강점이 드러났다. 나는 정보이용자 분석 수업에서 배운 이용자 행태 분석 기법을 활용해,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 검색 후 클릭률, 검색 실패 사례 등을 통계로 정리했다. 예를 들어, ‘AI’, ‘기후위기’, ‘4차 산업혁명’ 같은 키워드는 검색은 많았지만 클릭률은 낮았고, 이는 메타데이터 부족이나 요약 정보의 부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 인터뷰를 통해 실제 불편 사항을 수집하고, 기존 시스템보다 직관적인 필터 UI, 키워드 추천 자동완성 기능 개선, 관련 자료 자동 추천 기능 보완 등의 안을 제안했다. 이 개선안은 개발자 팀에 의해 부분적으로 적용되었고, 학기 말에 다시 조사한 설문에서는 ‘전자도서관 시스템 만족도’가 평균 2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 나는 문헌정보학이라는 전공이 단지 책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보 흐름을 설계하고, 검색 구조를 개선하고, 사람의 탐색 행위를 과학적으로 지원하는 통합 역량이라는 것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문헌정보학, 전자도서관 시스템의 핵심 엔진이었다
이번 전자도서관 구축 프로젝트는 내게 단순한 실무 경험이 아니라, 전공자로서의 자존감과 확신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였다. 우리는 종종 문헌정보학이 ‘사서 양성 전공’이라는 편협한 시선에 갇혀 있지만, 실제로는 정보를 구조화하고 검색 가능한 형태로 설계하며, 사람 중심의 정보 흐름을 만들어가는 핵심 기획 전공이다.
전자도서관은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자료, 그 자료의 분류 방식, 검색어 하나하나의 설계, 이용자 흐름을 읽는 감각 모두가 문헌정보학이 제공하는 도구와 언어에서 출발한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당신은, 단순한 책의 관리자도, 기술자도 아니다.
당신은 정보를 흐르게 하는 설계자이며, 정보사회를 연결하는 시스템의 엔진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가장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전자도서관 구축’이다.
'문헌정보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서관 메타데이터 설계 과정에서 필요한 문헌정보학 개념 (0) | 2025.07.12 |
|---|---|
|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본 디지털 정보관리자의 역할 (0) | 2025.07.12 |
| 작은도서관 실습 중 문헌정보학 지식이 실제로 쓰인 순간들 (0) | 2025.07.12 |
| 문헌정보학과 인턴십 후기! 도서관 전산 시스템 관리부터 메타데이터까지 (0) | 2025.07.12 |
| 문헌정보학 수업만으로는 몰랐던 종이 vs 디지털 기록물 실전 차이 (0) | 2025.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