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기록물 관리의 현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서 ‘기록정보관리론’이나 ‘기록관리학’ 같은 과목을 수강하면, 우리는 종이 기록과 디지털 기록물의 분류 체계, 보존 기간, 메타데이터 구성 방식 등 다양한 이론을 접하게 된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기업 내의 행정기록물은 정보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공 분야로 간주된다.
하지만 막상 기록관리 실습이나 현장 업무에 참여해 보면, 이론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복잡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학교에서 종이와 전자 기록물의 관리 체계를 배웠고, 관련 법령, 보존 연한, 메타데이터 구성, 기록물평가기준표(RMS), 이관 절차 등을 이론적으로 공부해왔다. 그러나 실제 공공기관 기록관에서 실습하며 느낀 점은 명확했다.
“종이와 디지털 기록물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그리고 “문헌정보학 수업만으로는 실무의 흐름과 판단을 따라가기 어렵다.”
이 글에서는 내가 실무 현장에서 경험한 종이 기록물과 디지털 기록물의 실질적 차이,
그리고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배운 이론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거나, 반대로 적용되지 않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이 경험은 문헌정보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실무의 현실’이기도 하다.

종이 기록물, 물리적 관리의 체계성과 한계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종이 기록물은 ‘기초이자 표준’으로 많이 다뤄진다. 우리는 보존기간 기준에 따라 1년, 5년, 준영구, 영구로 분류하고, 행정문서 파일철 단위로 RMS(기록물관리시스템)에 등록하며, 정기적으로 기록관으로 이관되는 과정을 배운다. 실제로도 공공기관에서는 이러한 기준을 기반으로 종이 기록을 관리하고 있었고, 나는 실습 초기에 “그냥 기준대로 정리하고 박스에 넣으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같은 부서에서 생산한 유사한 성격의 문서라도 담당자가 바뀔 경우 제목 작성 방식, 파일철 분류 기준, 첨부자료 구성 방식이 달라져서 서로 다른 유형의 문서가 같은 분류 안에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문서는 인감이 누락되어 있었고, 어떤 문서는 첨부자료가 별도로 빠져 있었다. 이때 내가 느낀 건, 이론에서 말하는 '기록물의 일관성'이 사람의 실무 능력과 습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물리적 공간과 관리 행정이었다. 일정 기간 이상 보존해야 하는 기록물은 기록관 보존서고로 옮겨지는데, 박스마다 기재해야 할 정보가 많고, 손으로 수작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자주 발생했다. 한 번은 파일철 라벨이 떨어져 문서가 어느 부서의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또 한 번은 기록물 관리대장과 실제 문서가 불일치해 이관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문헌정보학 수업에서는 분류기준과 기록물 평가표가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전제로 배운다. 그러나 실제 실무는 각 부서 담당자의 기록 이해도, 문서 작성 습관, 이관 시기, 공간 상황, 장비 상태 등 비표준적 변수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작업이라는 걸 실감했다.
디지털 기록물, 기술적 편의성과 통합 관리의 이면
종이 기록물이 물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디지털 기록물은 기술적으로는 훨씬 유연하고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문헌정보학 수업에서도 디지털 기록물은 RMS, EDRMS, 클라우드 기반 저장소를 통해 효율적으로 관리되며 검색과 백업이 용이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하지만 실습에서 경험한 디지털 기록물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버전 관리였다. 하나의 기록물 파일이 작성되고, 상급자 검토 후 수정되고, 다시 협업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되었지만, 각 단계에서 파일명이 ‘최종’,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으로 중복 저장되어 있었다. 이는 시스템상 등록된 파일과 실제 업무에 사용된 파일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유발했고, 이로 인해 ‘기록의 신뢰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차이는 시스템 간 연계 미비였다. 많은 기관이 RMS, 그룹웨어, 전자결재 시스템 등을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이들 시스템 간의 완벽한 연동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RMS에는 저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자결재로만 공유된 문서가 있었고, 반대로 문서 결재는 끝났지만 RMS에는 등록되지 않은 기록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록물평가 기준표를 적용할 수 없는 회색지대 문서가 생기게 되며, 문헌정보학 수업에서는 다루지 않는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기록물은 보안과 백업 체계가 강조되는데, 실제 실무에서는 보안 접근 권한이 너무 복잡하게 설정되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기록 접근제어’가 중요하지만, 실무에서는 ‘불필요한 보안 제한’이 오히려 정보 흐름을 막고 업무 협업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즉, 디지털 기록물은 편리하지만, 관리가 잘못되면 혼란은 종이보다 훨씬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록관리를 배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문헌정보학 수업을 통해 배운 이론들은 분명 기록관리를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종이 기록과 디지털 기록이 실무에서 어떻게 다르게 관리되는지, 그리고 어떤 요소가 실질적인 판단을 좌우하는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실무는 상황마다 다르고, 기록관리자는 정답을 찾기보다 적절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종이 기록물은 물리적 보관과 문서의 상태 유지가 관건이라면, 디지털 기록물은 시스템 간 연계, 접근 권한, 데이터 정합성이 더 중요한 이슈였다. 이 두 기록물 유형 모두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관리 방식, 판단 기준, 협업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건, 기록물은 ‘데이터’가 아니라 ‘증거’라는 사실이다. 어떤 문서가 왜 보존되고,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며, 누가 언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지는 단순한 체계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운영 철학과 문화, 그리고 정보 책임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기록관리란 문서 분류의 기술이 아니라, 정보를 책임지는 태도와 사고방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진짜 차이는, 교실이 아니라 기록 현장 안에서만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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