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의 기록은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단순한 행정문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록물은 행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흔적이며 공공 책임의 근거이자, 사회의 역사 그 자체다. 공공기관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문서와 보고서, 회의록, 정책자료는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의사결정과 권한 행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러한 기록물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보존하며, 필요할 때 어떻게 꺼내어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는 단순한 문서 행정의 영역이 아니다. 이것은 정보 설계와 관리의 문제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나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정보의 수집, 분류, 조직, 제공이라는 핵심 개념을 배우고 실습해 왔다. 이러한 지식은 도서관이나 정보센터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깊숙이 활용된다. 이 글에서는 실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 흐름과 그 속에서 문헌정보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기록물 분류 체계와 문헌정보학의 메타데이터 설계
공공기관은 해마다 수만 건의 기록물을 생성한다. 이 기록물은 부서별, 업무별로 구분되며, 일정 기간 동안 법적으로 보존 의무가 있다. 이때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와 검색을 위해 기록물 분류기준표(Retention Schedule)와 함께, 표준화된 메타데이터 체계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문헌정보학에서 배우는 정보 분류 체계와 메타데이터 설계 경험은 이 과정에서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KDC(한국십진분류법)나 DDC(듀이십진분류법)를 통해 체계적인 지식 분류의 원리를 이해한 전공자는, 기관 내 기록물을 구조적으로 정리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업무 유형, 생산 주체, 발생 시점, 관련 사업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다차원적 메타데이터를 설계할 수 있다.
내가 실습했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정책자료와 일반 문서를 같은 방식으로 저장하고 있어 검색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헌정보학에서 익힌 주제어 설정, 색인 전략, 사용자 중심 탐색구조 설계를 적용한 결과, 유사 문서 간 연결성과 주제 기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는 단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설계의 시각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존 기간과 정보 생애주기 관리, 기록의 운명을 결정짓는 설계
공공기관의 기록물은 생성부터 폐기까지 생애주기를 가진다. 어떤 기록물은 1년 후 폐기되지만, 어떤 자료는 10년 이상, 심지어 영구 보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보존 기간을 설정하고, 주기적으로 기록물 상태를 점검하며, 적절한 시점에 이관하거나 폐기하는 과정에는 정확한 분류, 우선순위 설정, 정보 가치 판단 능력이 요구된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여기서 정보의 가치 평가와 구조적 분류 역량을 통해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예컨대, 한 기관에서 회의록과 정책 보고서가 모두 ‘일반 문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나는 두 자료의 생성 주체와 활용 빈도,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하여 보존 우선순위 기준을 재정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 작업은 도서관의 장서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한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또한, 문헌정보학에서는 정보의 이용 가능성(Accessibility)과 지속 가능성(Preservation)을 동시에 고려한 정보 설계를 강조한다. 이 사고방식은 단기적 행정 편의가 아닌, 장기적 기록 자산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는 문서의 포맷, 파일 크기, 저장 위치, 접근 권한 등이 모두 정보 생애주기 설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공자의 구조적 설계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공공 책임성과 접근성, 정보 서비스 관점에서 본 기록물 관리
공공기관의 기록물은 내부 행정 처리를 위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적 자산이다. 따라서 단지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공개하고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문헌정보학 전공자의 정보 서비스 관점이 강력한 역할을 한다.
정보공개 청구나 시민 대상의 데이터 포털 서비스를 설계할 때,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이용자 행태 분석, 검색 인터페이스 설계, 색인 최적화 전략 등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나는 실제로 한 기관의 기록물 검색 시스템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용자가 찾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했다. 단순히 문서를 정리해 두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검색 용이성을 고려한 키워드 체계를 정비하는 일은 문헌정보학적 역량이 없으면 절대 수월하지 않다.
또한, 정보의 민감도에 따라 접근 제한 수준을 조정하고, 비식별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도 전공자는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기 때문에 단순 기술자보다 더 세밀하고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기록물은 법적 근거를 넘어, 정보 서비스 철학과 공공 책임 의식을 가진 설계자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속 기록물의 진화와 문헌정보학의 대응력
오늘날 기록물은 더 이상 종이 문서나 정형화된 보고서 형태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메일, 협업 툴 메시지, 내부 인트라넷 게시글, 클라우드 기반 문서까지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가 기록물의 형태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런 흐름은 문헌정보학적 정보 설계 사고를 더욱 필요로 만든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정보 유형의 변화에 대응해, 다층적인 정보 구조를 설계하거나 다양한 접근 지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 실무에서도 전통적인 기록물 관리 담당자가 디지털 메시지나 웹 기반 협업 플랫폼에서 생성된 기록의 분류 기준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정보의 목적, 생산 맥락, 이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자료를 분류하고 색인하는 방법을 제안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정보의 형태가 변해도, 정보의 본질을 꿰뚫는 문헌정보학의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문헌정보학, 공공 기록의 미래를 설계하는 학문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는 이제 단순 보관이 아니라, 정보 정책, 기술 설계, 서비스 경험이 통합된 전략적 업무다. 이 안에서 문헌정보학은 분명한 전문성과 실무 활용성을 보여준다. 기록물의 분류와 색인, 메타데이터 설계, 이용자 중심의 탐색구조, 보존 우선순위 판단, 정보 공개 설계까지 그 모든 과정에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기여할 수 있는 접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나는 기록물 관리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문헌정보학이 단지 도서관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정보의 흐름, 책임, 보존, 활용이라는 본질은 어떤 기관에서든 동일하며, 그 중심에 필요한 것은 정보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공기록물은 한 기관의 과거이자, 시민의 권리이며, 미래의 정책 판단 근거다. 이 기록을 의미 있게 만들고, 접근 가능하게 하며, 책임 있게 보존하는 일. 그 중심에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설 수 있다. 그리고 그 설계는 곧 정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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