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으로 배운 DDC, 실무에서 직접 적용해보니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듀이십진분류법(DDC, Dewey Decimal Classification)을 한 번쯤은 배운다. 1876년 미국의 멜빌 듀이가 고안한 이 분류 체계는, 전 세계 도서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대표적인 십진 분류 시스템이다. 학문 전체를 10개의 주제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는 구조는 명확하고 논리적이며, 정보 조직의 기초로서 매우 이상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대학 실습과 도서관 현장에서 실제로 DDC를 적용해보면서, 이 체계가 이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실무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특히 이용자 중심 서비스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도서관에서, DDC의 일관성과 정확성이 때로는 이용자 친화성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DDC를 직접 적용하며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인 해석과 대안을 제시해보려 한다. 단순히 “분류 체계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서,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것이 문헌정보학적 사고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함께 고민해보자.

문제 1. 복합 주제 도서의 분류, 주제 우선 원칙의 한계
DDC의 가장 큰 장점은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현대의 책들은 한 가지 주제만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와 정치, 경제의 상관관계”를 다룬 책은 어디에 분류해야 할까? 환경과학(363.7), 경제학(330), 정치학(320) 모두 관련되어 있다.
문헌정보학 수업에서는 이러한 경우 “주제 우선 원칙”을 적용하라고 배운다. 가장 핵심 주제를 선정하여 해당 주제에 분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결정이 매우 주관적이고, 분류자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실제 실습 중 나는 같은 주제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서로 다른 청구기호로 분류된 사례를 발견했다. 한 권은 363.7387(환경문제), 다른 한 권은 330.9(경제학적 관점의 환경 문제)로 처리되어 있었다.
이러한 혼선은 서가 배열에 혼동을 주고, 이용자가 관련 주제를 한 자리에서 탐색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즉, DDC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원칙이 오히려 이용자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 2. 지나치게 세분화 된 숫자 체계, 현실과 맞지 않는 디테일
DDC는 정밀한 분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소수점 이하로 분류를 세분화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과학은 004번대, 그 아래로 소프트웨어(005.1), 운영체제(005.43), 프로그래밍 언어(005.13), 파이썬(005.133) 등 매우 구체적인 수준까지 분류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구조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런 세분화는 오히려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은 ‘파이썬’에 대한 초급 입문서인데도 005.133으로, 또 어떤 책은 종합적인 IT 입문서인데 004로 분류되어 있었다. 일반 이용자는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파이썬 책이 왜 저쪽에 따로 있지?”라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청구기호가 너무 길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소수점 아래 3~4자리 이상 내려가는 경우 서가 배열이 불안정해지고, 라벨 출력 시스템의 한계와 서가 정리 혼선을 동시에 불러왔다. 이는 실제로 사서 업무의 효율성까지 떨어뜨리는 문제로 이어졌다.
문제 3.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유연하지 않은 체계
DDC는 19세기 말에 설계된 분류법이다. 그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학문 간 위계 관계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예를 들어 여성학, 젠더학, 퀴어 연구 같은 현대 사회의 핵심 분야들은 DDC 상에서는 독립된 주제로 다뤄지지 않거나, 부수적인 주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젠더와 문학’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은 809.93353이라는 복잡한 보조기호 아래로 밀려나 있었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해당 분야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는 단지 기술적인 분류의 문제를 넘어서, 정보의 배치와 가시성이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이슈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정보 조직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인식 구조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DDC의 한계가 아니라, 그 체계를 적용하는 사람의 시선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분류 체계는 정답이 아니라 기준이다
DDC는 분명 훌륭한 정보 조직 도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준일 뿐,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다. 도서관에서의 분류는 정보의 흐름을 안내하는 길잡이이자, 이용자의 탐색 경험을 돕는 ‘정보 내비게이션 시스템’이어야 한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우리는 DDC를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체계의 구조와 한계를 이해하고, 실제 사용자 경험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실무에서 분류 체계를 적용할 때는 기계적으로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본질과 독자의 기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번 실습과 적용 경험을 통해 나는, 정보의 정확성만큼이나 정보의 접근성과 해석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웠다.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이 바로, 문헌정보학을 배우고 실무에 적용하는 전공자라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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