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책 정리’에 숨겨진 분류의 논리
도서관에서 가흔히 보는 장면 중 하나는 서가에서 책을 정리하는 사서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히 “책꽂이 정리”라고 여기지만, 문헌정보학 전공자라면 이 단순한 작업에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정보 구조가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문헌정보학과의 실습 과정에서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 작은도서관 등 다양한 도서관 현장을 경험했고, 그 안에서 실제 서가 정리 업무에 참여했다. 책을 꽂는 일 하나에도 분류 체계, 청구기호, 자료 상태, 물리적 공간 설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서가 정리는 단순히 책을 제자리에 꽂는 행위가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실무였다. 이용자가 어떤 동선으로 책을 탐색하게 되는지, 어느 위치에 어떤 주제를 배치하는지가 그들의 정보 접근성과 탐색 경험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구조였다.
이 글에서는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배운 이론들이 실제 서가 정리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마주친 예상 밖의 문제들과 그 해결 과정을 바탕으로 정보 분류의 실전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서가 정리의 출발점! 분류기호와 청구기호 해석 능력
서가 정리는 단순히 책을 제목 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도서관에서는 KDC(한국십진분류법), DDC(듀이십진분류법) 등 표준 분류체계를 기준으로 분류기호 → 저자기호 → 권차기호 순서로 도서를 배열한다. 이 순서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하지 못하면, 서가 전체의 논리적 흐름이 무너진다.
문헌정보학 수업에서는 이러한 분류체계를 배우며, 각 기호가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는 훈련을 받는다. 실무에서는 이러한 해석 능력이 ‘적재적소에 책을 배치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KDC 기준에서 813.6과 813.7의 차이를 이해하고, 청구기호 ‘813.7 김ㅁㄴ’과 ‘813.7 박ㅂㅈ’의 서열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올바른 서가 정리가 가능하다.
실습 초기에 나는 이러한 숫자 구조를 기계적으로 이해하다가 소수점 이하 저자기호 해석을 놓치는 실수를 여러 번 했다. 그 경험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정보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였다. 이후에는 자료를 실제로 열람하고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는 습관을 들이며 분류기호의 논리와 정보 내용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역량이 쌓였다.
현장에서 마주친 문제, 공간 구조와 분류 체계의 충돌
이론적으로는 분류체계를 따라 서가를 배열하면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습 중 가장 자주 마주한 문제는 서가 공간이 부족한 경우, 혹은 분류 범위가 서가 단위를 넘어가는 경우였다. 예를 들어 500번대 과학 서가는 두 줄에 걸쳐 있었는데, 그 사이에 신간 도서가 들어오면 전체 배열을 재정비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경우, 실무자는 ‘임시 서가’나 ‘특수 배치’라는 방식을 활용하는데, 이때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이용자 행동 분석과 정보 설계 이론이 실제로 쓰였다. 예를 들어, 516(기하학)과 519(확률론) 자료가 분리된 서가에 나뉘어 있을 경우, 우리는 이들을 시각적으로 인접하게 배치해 탐색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구조를 재설계했다.
또 다른 예시는 ‘여성 작가 에세이 모음 서가’ 기획이었다. 분류 체계상 문학은 800번대, 에세이는 800.4 또는 814 부근에 있지만, 여성주의나 젠더 관련 주제는 300대나 330대 사회과학 영역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경우, 분류 체계를 그대로 따를 경우 책이 서로 멀리 배치된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큐레이션 서가 내에서 분류를 유연하게 묶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런 모든 작업은 분류 체계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정보 흐름과 이용자 접근성을 모두 고려한 실질적 분류 운영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보 흐름과 사용자 경험을 연결하는 ‘서가 설계’의 진짜 역할
문헌정보학 수업에서 배우는 정보 조직 이론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공간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서가 정리는 단지 책을 정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이용자에게 시각적으로 제공하는 작업이다.
실제로 내가 참여한 학교도서관 실습에서는 ‘청소년 추천 도서 서가’ 코너를 담당했는데, 여기에서 기존 분류 체계를 유연하게 재배치하여 탐색 흐름 중심 서가 구조를 설계했다. 예를 들어 100번대 철학 서적 중 청소년 독서용으로 적합한 책은 별도 추천 구역에 모아두고, 800번대 문학 작품 중 관련 주제를 다룬 책도 함께 배치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히 주제별 분류가 아니라, 이용자의 정보 탐색 동선을 분석하고 맞춤화하는 정보 큐레이션이었다.
또한 시각적인 정보 배열 방식도 중요했다. 예를 들어 인기 도서는 눈높이 위치에, 정보 접근성이 낮은 분류(예: 고전철학)는 상단 서가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성했고, 이는 이용자의 시선 흐름과 정보 접근 가능성을 반영한 서가 설계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정보 서비스론, 정보이용자 분석, 주제 분석 기법이 실제로 설계 전략에 녹아들 수 있었다.
서가 정리는 문헌정보학의 핵심 실무, 정보 설계의 시작점
문헌정보학은 이론적으로는 ‘정보의 조직화’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 이론은 서가라는 실제 공간에서 ‘가시화된 구조’로 구현된다. 서가 정리는 단순한 물리적 작업이 아니라, 정보를 사람에게 닿게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실무다.
실습과 실무를 거치며 나는 깨달았다. 서가 정리는 단순히 ‘책을 정렬하는 작업’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고 시각화하는 실천적 지식이라는 것을.
문헌정보학 전공자는 단순한 정리자가 아니라, 이용자의 탐색 행동을 설계하고, 정보 흐름을 시각화하며, 정보 접근성을 현실 공간에서 구현하는 설계자다. 서가 정리는 그 설계의 시작점이며,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가장 실질적인 ‘정보 조직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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